[복거일 칼럼] 가나야마 마사히데를 추모하며

입력 2019-02-10 17:28  

韓 제철소 설립에 헌신한 가나야마 前 대사
징용 승소 판결…신일철주금 포철 지분 압류
정치력 발휘해 韓·日간 난처한 상황 막아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은 제철공장을 열망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은 그의 호소에 냉담했다. 인도, 터키, 멕시코, 브라질처럼 조건이 좋은 나라들도 실패했으니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박 대통령은 도와줄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건넸다. “이번엔 주일 한국 특명전권대사 노릇을 해주십시오. 포항제철 건설에 관해 사토 총리대신의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하면 대사께선 서울로 돌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나야마가 맡은 일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였다. 사토 총리는 이미 박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터였다. 가나야마는 외무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총리에게 박 대통령의 친서를 올렸다. 사토 총리는 “제철은 안 된다고 했는데 또 얘기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가나야마는 박 대통령의 제철공장에 관한 꿈과 의지를 간곡히 설명했다. 그제야 사토 총리는 일본 철강업계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가나야마는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야하타제철소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喜寬)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나야마는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무슨 제철소냐”고 냉소했다. 가나야마는 “1897년엔 일본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설득돼 이나야마는 포항제철 설립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자금은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가나야마 대사의 헌신이 열매를 맺어 1970년 포항제철소 기공식이 열렸다. 3년 뒤 포항에선 조강 연산 103만t의 포항제철소 준공식이 거행됐고, 사토 전 총리가 국빈으로 참석했다. 그 뒤 포항제철이 국제적 기업으로 발전한 것은 모두 잘 아는 역사다.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뒤 야하타제철소는 두 차례 합병을 거쳐 신일철주금이 됐다. 포항제철이 빠르게 자라나는 사이 야하타제철소의 후신들은 경쟁력이 낮아졌고,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이나야마 회장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두 회사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근년에 신일철주금이 특허 침해로 포항제철을 제소한 적이 있지만 상호 지분 교환으로 관계를 정상화했다.

얼마 전 야하타제철소에서 일했던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보상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신일철주금이 포항제철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득한 지분이 압류 대상이 됐다. 참으로 얄궂은 인연이다. 가나야마 대사와 이나야마 회장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일이다.

이처럼 난처한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두 나라가 조약으로 과거를 마무리했으면 어느 정부든 국내 사정으로 분쟁이 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되 그 판결의 영향이 나라 밖까지 미치는 것을 막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정치 지도력이다. 그런 방안에 관해선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상당한 합의가 이뤄졌다.

조약을 국내 사정을 들어 허물면 궁극적으로 손해는 우리가 본다. 우리의 국제적 평판이 크게 낮아지고 그만큼 외교 능력이 약화된다. 외국 기업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못하니, 외국 기업들이 위험 할증을 늘려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일본은 안보와 경제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다. 한국과 일본 사이가 벌어지면 한·미 동맹도 빈 껍질이 된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과 부품을 일본에서 많이 들여온다. 반면 일본으로선 한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드물다. 한국 사회의 거센 반일(反日) 감정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바꾸려는 지도자의 시도는 늘 성공했지만 우리 사회는 일방적 손해를 봤다.

가나야마는 주한 대사로 외교관 경력을 마감했다. 원래 유럽에서 오래 활동했던 터라 그는 유럽과의 문화 교류를 관장하는 단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좋은 자리를 사양하고 궂은일만 많은 한국과의 문화 교류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늘 향한 한국에 자신의 유골 일부를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 그의 유골 일부는 파주 천주교 묘지에 묻혀 있다. 고맙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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